1. 의사의 설명의무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란?
의사는 사람의 가장 소중한 생명과 신체를 다루는 의료에 종사하는 자이므로 그 사회적 책임 내지 사명감은 지대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경제생활이 윤택하여지고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면서 지역적인 차이는 다소 있다고 하여도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의사의 진료와 조언을 받아서 보존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진료 및 치료행위는 일반적으로 환자의 인체에 대한 침습을 포함하므로 그것이 정당한 행위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환자의 승낙을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환자의 승낙이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는 환자에게 질병의 종류와 내용 및 치료방법 그리고 그에 따른 위험과 부작용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합니다. 특히 일정한 질병에 대하여 여러가지 치료방법이 있을 경우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각 방법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설명해 준 뒤에 환자로 하여금 일정한 치료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의사는 환자의 유효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의료침습에 앞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환자에게 의료에 관한 제반사항을 설명할 법적 의무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의사는 환자에게 질병에 관련된 지식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환자는 자신의 질병치료에 대하여 결정할 기회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사의 치료행위에 대한 환자의 승낙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의 한 표현이기 때문에 충분한 설명을 기초로 한 승낙만이 위법성을 조각하게 됩니다.
2. 의사의 설명의무
1) 헌법상의 근거
진료에 있어서 의사에게 재량권이 있다면 환자에게는 자기결정권이 있습니다. 자기결정권은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기본권에 근거한 것으로 인간의 신체적 자유와 완전성에 대하여 제3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권의 소유자가 자기책임하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헌법 제10조의 내용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은 직접 적용되는 대사인적 기본권으로서 국가는 사인간에 있어서도 인격권의 침해가 행해지지 않도록 감시․조정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 대한 침해행위는 생명, 건강, 명예,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포함하는 것으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되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됩니다.
2) 민법상의 근거
의사의 설명의무는 계약과 불법행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설명의무를 의사와 환자간에 체결되는 의료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독립적인 부수의무로 파악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에는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환자가 손해를 입은 때에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되는 것으로 봅니다.
●계약
의사와 환자 사이에 체결된 의료계약에 의하여 의사에게는 주된 의무인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부수적 의무인 보호의무와 설명의무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부수적 의무인 의사의 설명의무는 단지 주된 급부에 종속하는 것인가 아니면 주된 급부와 병존하는 독립적 부수의무인가 문제가 됩니다.
승낙에 관계되는 설명은 독립적 부수의무에 속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단 및 예후설명은 독립적 부수의무로 간주되고 있으며, 진단설명의 필요성은 종종 침습의 의미․효과 및 위험 설명과 결합하여 야기됩니다. 이와 같이 의사의 설명의무를 계약상 의사의 독립적인 부수의무로 이해하는 이유는 의사가 환자의 자기결정을 위한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고는 의료계약상 주된 급부인 진료행위를 적법하게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사가 이러한 부수의무를 위반하면 계약상 불완전이행에 의한 채무불이행이 되어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됩니다.
● 불법행위
불법행위에 있어서의 의료침습은 환자의 신체적 완전성의 침해로 파악되며 그 보호법익은 신체 및 건강의 완전성입니다. 이러한 의료침습의 정당화 근거로서 환자의 유효한 승낙이 필요하게 되며, 그 승낙의 전제로서 의사의 설명이 필요하게 됩니다. 의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하여 환자의 유효한 승낙이 결여된 상태에서 의료과오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됩니다.
3. 의사의 설명의무의 범위
의사의 설명의무의 범위 및 정도는 환자의 객관적․주관적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여 정해질 것인 바, 당해 환자가 처한 상황에서 평균인에게 행할 설명의 범위가 객관적 요소이고, 당해 환자의 특별한 사정 즉, 교양․성격․연령․신조․심신상태․의사와의 관계 그리고 그가 특히 중요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항 등이 주관적 요소입니다.
1) 위험성 설명의무
의사가 설명해야 하는 의료침습의 결과 발생할 위험성은 어떠한 것인가? 위험은 대체로 세 가지로 유형화됩다. 첫째는 의학상 예기할 수 있으며 통상적 의술의 법칙에 따르면 쉽게 그 결과 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정형적 위험입니다. 둘째는 쉽게 결과 발생을 회피할 수는 없지만, 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비정형적 위험이다. 셋째는 결과발생이 의학상 예견되고, 그에 대해 확실하고 유효한 방어수단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정형적 위험입니다. 이러한 세가지 유형의 위험중 의사가 설명해야 할 것은 셋째의 정형적 위험입니다. 결국 이것은 위험발생의 개연성 정도에 의한 판단인데, 물론 설명요부는 이 기준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결과의 중대성 곧 사망의 위험인가, 청력장애의 위험인가, 손가락 하나의 일시적 마비의 위험인가 등과 당해 진료행위의 적응성 정도 등을 함께 고려하여 결정할 것입니다.
2) 설명의무의 제한
의사의 설명의무는 환자의 구체적인 사정과 같은 주관적인 요소에 의하여 제한될 수도 있고 의사의 치료상의 특권과 같은 객관적인 요소에 의하여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설명의무의 범위는 환자의 인식수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환자가 이미 알고 있는 사항에 대하여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정도의 의학상식이나 질병에 관한 평균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해 환자가 실제로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의심이 가는 경우에는 이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의사가 그 확인을 게을리한 때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면하지 못합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그의 질병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오히려 환자의 건강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의사의 설명의무를 제한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학상의 이유로 의사의 설명의무를 널리 제한하게 되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크게 제한되어 공동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설명의무 그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하고, 그 밖의 경우에는 설명의 방법을 신중하게 함으로써 환자에게 주는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진단결과 및 병명 설명
의사의 설명의무가 문제되는 영역은 주로 병상(病狀)․침습․위험의 내용 등인데 이 중에서 가장 많이 문제를 야기한 것이 병상, 즉 진단 결과 및 병명에 대한 설명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병상을 숨기거나 허위의 설명을 하여 환자로부터 승낙을 얻어내면 그 승낙은 무효인 것으로 됩니다. 그런데 병상 즉 진단 결과가 암의 경우와 같이 매우 중대한 것인 때에는 그대로 환자 자신에게 통지하는 것이 통상 이익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의사는 재량에 의해 설명을 하지 않고 병명을 감추고서 수술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설명의무위반으로 될 것인가? 암․백혈병 등 악성질환의 경우에 의사가 그 병명을 숨기고 다른 병명으로 승낙을 얻어 진료를 행하는 것을 위법하다고 봅니다.
4.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의 효과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은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되며, 동시에 환자의 신체침해가 된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5.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란?
자기결정권이라 함은 진료가 의료기술상 정당하더라도 환자의 동의 및 승낙이 없는 한 적법행위로 되지 않는다고 하는 법원칙을 말합니다. 승낙이 없는 의료행위는 위법이고 비록 치료목적이 이루어졌을지라도 이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것입니다.
1) 자기결정권
● 승낙의 대상
환자의 승낙은 우선 수술․주사 등의 의료침습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진찰 특히 어떤 검사가 고통 내지 인체에의 영향을 수반하는 경우 그리고 침습후의 인체에 대한 영향도 승낙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즉 언어장해, 청각상실, 신체일부의 마비 등의 위험에 관하여도 승낙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번 주어진 승낙의 철회․제한 내지 확대는 역시 환자의 자유에 속합니다.
● 승낙의 요건
● 승낙능력
환자의 승낙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환자 자신이 승낙에 관한 일정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승낙은 법률행위인 의사표시가 아니며, 승낙자의 권리범위를 침습하는 사실행위를 행하게 하기 위한 허가 내지 수권이므로, 이 승낙의 능력은 보통의 법률행위능력과 동일하다고 할 수 없다. 승낙능력은 재산거래에서 만큼의 높은 정도의 판단능력일 필요는 없고, 스스로 정신적․육체적 고통과 손상 및 위험을 수인할 것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상태, 당해 의료행위의 의의․내용 및 결과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위험성의 내용과 정도를 인식할 수 있는 판단능력이 있으면 될 것입니다.
● 승낙의 대리
승낙능력이 없는 환자에 대해서는 그 친권자 등 법정대리인에 의한 대리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 미성년자 등의 보호가 필요한 한 법정대리인의 승낙이 요구됩니다. 민법상 미성년자 등의 거래상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의 취지로 미루어 보아 의료침습에 있어서도 그러한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의사의 설명과 환자의 자기 결정
의료행위가 정당한 행위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환자의 승낙이 필요한데, 이러한 환자의 승낙이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그가 앓고 있는 질병의 종류와 내용 및 그 치료방법과 그에 따른 위험등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는 주체이지 단순한 대상이 아니며, 의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최대로 존중하면서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